Accordion Menu Using jQuery
선사시대 이래 우리나라에서 수 천년 동안 전래되어온 천년의 신비 채화칠기와 나전칠기는 뿌리깊은 전통예술이다. 1593년 성웅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 통제사로 통영에 부임한 이후 12공방을 설치하였고, 12공방중 상하칠방에서 나전칠기를 생산하므로 인하여 통영이 나전칠기를 생산하는 본 고장으로 전국에 널리 알려지면서 400여년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작성일 : 13-08-17 09:34
[그린경제 2013.08.14]]천 년을 이어온 옻칠…'칠흑 광채'로 세계인을 홀리다
 글쓴이 : 옻칠미술관
조회 : 5,356  

천 년을 이어온 옻칠…'칠흑 광채'로
 세계인을 홀리다
[스페셜]김성수 통영옻칠미술관 관장


오래 사용할수록 윤기나고 부드러워 金보다 귀한 천연도료

목분상감기법 창안 전통 목칠공예 '현대 예술'로 격상시켜

異質재료 자유롭게 같이 사용…'옻칠' 고유명사 세계 알려

옻나무단지 조성 선행되어야 옻칠예술 계승·세계화도 가능

   
▲ 통영옻칠미술관 김성수 관장
[그린경제=노정용기자] 칠흑 같은 천연광채를 띠어 궁중과 양반가의 사랑을 받아온 옻칠. 옻칠의 우수성은 널리 알려져 있다.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팔만대장경이 목판임에도 좀이 들지 않는 것은 경판마다 50g의 옻칠이 칠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 뿐이 아니다. 옻칠이 칠해진 소반 위에 금방 상하는 바나나를 올려놓으면 실외에 두더라도 40일 가량 보존된다. 옻칠은 예술 작품에 사용되기도 하지만 옻칠의 원료인 옻은 항암 등의 약리 작용을 인정받아 고급약재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우수한 옻칠은 현대에 이르러 값싼 캐슈라는 합성칠에 밀려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이 같은 현실을 안타깝게 여긴 옻칠예술가 김성수 전 숙명여대 교수는 고향 통영에 옻칠미술관을 건립하고 옻칠예술의 현대화와 세계화라는 두 마리 토끼 사냥에 나섰다.

고향 통영이 옻칠문화의 본고장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옻칠을 위기에 빠뜨린 주범도 그곳이다. 값비싼 옻칠 대신에 캐슈를 칠해 퍼트리는 바람에 옻칠은 역겨운 냄새가 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된 것이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경상남도 도립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에 제1기생으로 들어가 지금까지 옻칠예술을 펼쳐온 김성수 통영옻칠미술관 관장을 만났다. <편집자 주>

   
 
-옻칠의 역사는 얼마나 되었습니까?

“동아시아에서 제작된 옻칠 공예품은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약 6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어요. 그중 우리나라에서 옻칠공예의 역사는 청동기시대의 기원전 4세기로 거슬러 올라가지요. 전북 고창군 아산면 석관묘에서 청동기 옻칠 파편이 발견되었고, 경남 창원시 의창구 동읍 다호리 15호 고분에서도 옻칠을 한 고배형 방형칠두를 비롯해 붓, 통형칠기, 활, 청동검 등이 발굴되었어요.”

백제 무령왕릉의 왕비 채화두침과 채화금장족좌는 백제 옻칠공예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지난 2011년 공주 공산성에서 출토된 옻칠한 가죽 갑옷과 마갑(馬甲)은 저수지에서 출토되었음에도 두텁게 옻칠한 부분은 명문을 포함해 고스란히 남아 있고 가죽은 썩어 없어진 것을 볼 때 옻칠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할 수 있다.

-무공해 천연 도장도료인 옻칠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칠흑같이 어둡고 흑진주같이 빛나는 천연광채와 함께, 둘째는 금은보석과 같은 장식과 잘 어울리는 장식성이 있고, 셋째는 조형성과 조각미라는 미학적 특징을 가지고 있어요. 옻칠은 또 밀착성이 탁월해서 방부성, 방충성, 내구성, 내열성, 내한성, 절연성, 전자파 흡수 효과를 갖는 등 다른 도료와는 비교할 수 없는 물리적 특성이 있습니다. 특히 오랫동안 사용할수록 더욱 광택을 발하는 광채와 윤기가 흐르듯 부드러운 촉감은 옻칠만이 지닌 특성이지요.”

   
 
-이렇게 대단한 옻칠과 나전으로 표현하는 우리 전통 나전칠기가 위기에 처한 이유는 무엇인지요?

“통일신라시대에는 옻칠에 천연안료를 배합하여 기물에 칠하는 채화칠기가 발달하였고,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옻칠을 한 기물에 자개 무늬를 장식하는 나전칠기가 발전하였어요. 그런데 한국전쟁 등으로 인한 경제적 악화로 나전칠기 공예는 급속하게 쇠퇴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옻칠장인들이 의식주 해결을 위해 귀얄(머리카락으로 만든 옻칠 칠하는 붓)을 버리고 이직한데다가 합성 칠로 대체되면서 옻칠이 아닌 캐슈를 칠한 나전칠기가 생산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관장님은 언제 옻칠 세계에 입문하셨습니까?

“1951년 경상남도 도립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가 경남 통영에 설립되었는데, 그곳에서 2년간 나전과 옻칠기법, 소묘, 도안, 정밀묘사, 설계제도(設計製圖) 등을 배웠어요. 이것을 계기로 나전칠기 공예에 입문하여 60여 년간 창작활동과 교육을 통해 옻칠예술의 계승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일제강점기에 연간 4252.5㎏ 가량 생산하던 옻칠 생산량이 지금은 급격하게 줄어들어 1000㎏ 가량에 불과하다고 들었습니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옻칠은 관수품이면서 군수품으로 취급되어 국가가 관리했어요. 일제강점기 때만해도 전국에 옻나무가 847만8122그루가 있었는데, 오늘날 원주 옻나무 재배단지에 6만2000여그루가 재배되고 있고, 생산량도 1000㎏ 밖에 되지 않아요. 한동안 캐슈칠이 옻칠로 인식되면서 옻칠이 국민들에게 외면받음으로써 생칠을 싼값으로 일본에 수출하고 일본산 정제칠을 비싼 값에 수입해서 사용하기도 했어요.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직접 생칠을 정제하여 사용하기도 합니다.”

-옻칠문화를 되살리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금보다도 귀한 천연 도장 도료로 만든 옻칠문화를 되살리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당연히 옻나무를 심는 일이지요. 옻나무는 화강암이 풍화되어 생성된 흙인 마사토에서 잘 자랍니다. 하루에 한 번 그늘이 지나가는 지역이 재배지로 알맞기에 치악산이 있는 원주가 적합한 요건을 두루 갖추었다고 할 수 있어요.”

김 관장은 충북 옥천과 경남 함양군도 옻나무 재배에 적지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옥천에서는 1899년부터 옻칠을 한 목관이나 갓, 상 등을 제작하여 팔았다는 기록이 있고, 함양군에서는 1945년 광복 이전까지만 해도 옻칠의 생산량이 많았다고 한다.

   
 
-1973년에 아프리카 북단에 위치한 튀니지에 파견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당시 튀니지 정부가 우리나라 나전칠기 전수자를 파견해달라고 요청해왔어요. 관광산업개발에 박차를 가하던 튀니지 정부에서 자국의 기능인을 양성하고자 우리나라에 나전칠기 전문가 파견을 요청해 온 것이지요. 그런데 나전칠기 기술은 옻칠과 나전의 기능이 분업화된 까다로운 기술이어서 한 사람이 두 기능을 갖추기란 쉽지 않아요. 더군다나 디자인과 제도, 끊음질과 줄음질 등의 기술에까지 능한 사람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혼자 튀니지로 파견되었어요. 1년 6개월간 나전칠기 기술을 전수해주는 한편 아랍의 다양한 전통문화와 프랑스 문화가 공존하는 현실에 큰 충격을 받았어요.”

-전통을 고수할 것인가, 아니면 현대미술로 전환해야 하느냐를 두고 갈등은 없었습니까?

“당연히 극심한 갈등을 겪었지요. 그런데 마음 한구석에는 굳이 서구적인 것을 지향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어요. 그래서 우리 것을 좀더 예술적으로 격상시킬 묘안이 없을까를 고민하다가 전통 목칠공예를 현대화시키는데 주력하자고 방향을 정했어요. 이렇게 해서 1976년에 조선시대의 목공예를 모태로 한 ‘목분상감기법’을 처음으로 창안했습니다.”

목분상감기법은 나전칠기에 사용되는 옻칠의 물성과 자개의 상감기법을 응용한 새로운 기법이다. 자개와 금속, 나무 등의 재료를 합리적으로 감입시킬 수 있는 기법으로서 전통의 현대화에 성공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재질인 목재와 금속을 기하학적인 현대 무늬로 정교하게 엮어내는 기술이 목분상감기법입니다. 구하기 어려운 자개 대신에 나무를 이용함으로써 작업을 편리하게 만든 동시에 서양의 가구보다 한국의 가구가 단조롭다는 평을 뒤집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어요.”

김성수 상감기법으로 명명된 목분상감기법은 특허청 실용신안 등록 14393호로 특허를 받았다. 특히 전통적인 목상감(木象嵌)과는 달리 목분상감기법은 평면, 곡면, 원형 등을 자유자재로 섬세하고 정교한 무늬로 상감할 수 있는데다가 금속, 나전, 옻칠, 나무를 같이 사용하여 제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김 관장은 목분상감기법의 연장선상에서 계란껍질이나 새의 알껍질을 이용해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옻칠을 공부한 지 40년만에 고민한 전통의 현대화는 무엇인가요?

“단순히 전통공예품만을 제작하는 재료로만 인식되던 나전과 옻칠을 가지고 현대적인 조형물을 만들고자 시도했어요. 종래의 안방가구를 현대인의 거실생활에 알맞게 변형시키는가 하면, 장식함이나 꽃병 같은 작은 소품에도 나무가 지닌 독특한 무늬를 그대로 살려 경쾌하고 세련된 느낌을 주었어요. 특히 나무의 결과 색을 고려해서 그 자체의 색상과 무늬를 적절히 배치함으로써 구상과 추상을 조화시켰어요. 형태는 전통에 두면서도 현대적 감각에 호응할 수 있도록 비례와 기능을 최대한 합리화한 것이지요.”

   
 
   
 
1987년 서울올림픽 기념 ‘한국현대미술 초대전’에 출품된 작품 ‘웅비(雄飛)’는 전통나전칠기 재료와 기법을 사용해 현대적인 조형미를 구현한 두 폭 가리개다. 봉황 두 마리가 마치 용이 승천하듯이 날아오르는 장면이 역동적으로 표현되어 주목을 받았다.

김 관장은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역사상 유례없는 나전칠로 된 가로 11m, 세로 5.5m 크기의 대형 조형물을 제작, 잠실 호텔 롯데월드에 천장화 ‘우주’를 설치하기도 했다. 전통나전기법인 ‘끊음질’을 새롭게 형상화하여 현대적 미감의 조형물로 설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를 계기로 한국옻칠회화를 탄생시키셨는데….

“전통나전칠기와 채화칠기에 기반을 둔 새로운 장르의 예술을 만들었어요. 옻칠공예와는 다른 장르이기에 ‘한국옻칠회화(Ottchil Painting)’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처음에는 옻칠회화에 서구식 액자를 접목시켜서 조화를 꾀했지만, 나중에는 프레임이 옻칠만이 가지는 광채, 장식성, 조각미, 방수, 방부, 방충효과 등에 방해가 된다는 생각에서 그 프레임을 벗어던졌어요. 옻칠 작품에 별도로 씌워져 있던 서구식 액자를 벗겨내고 작품 자체가 프레임을 겸한 ‘한국옻칠회화’가 탄생하게 된 것이지요.”

사실 화랑이나 미술관을 가면 관람객들에게 작품으로부터 얼마간 떨어져서 작품을 감상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옻칠회화 작품은 관람객이 직접 작품에 가까이 가서 손으로 만지며 질감을 느껴볼 수도 있고, 손때가 묻은 작품은 오히려 더한 광채를 발한다. 게다가 옻칠회화가 벽에 걸려 있으면 여름에 사람을 성가시게 하는 모기나 나방이 달려들지 않는 것은 덤이다.

   
 
-대학을 정년퇴임하고 사재를 털어 2006년 6월 옻칠미술관을 개관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60여 년 동안 옻칠문화로 밥벌이를 해온 사람의 책무라고나 할까요. 옻칠예술이 훌륭하다고 아무리 입으로 떠들어도 일반인은 피부에 와닿지 않아요. 옻칠미술관을 세우고 작품을 관람하게 하고, 단절 위기에 있는 옻칠예술이 면면히 이어가도록 하기 위해 옻칠예술에 관심있는 작가를 입주작가로 선정해 창의교육을 통한 창작활동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미국 버팔로대학에서 열린 ‘국제옻칠심포지엄’에서 외국인들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지난 5월 20일부터 24일까지 5일간 개최된 ‘아시아 락커 국제심포지엄’에 세계 여러 나라에서 105명의 석학들이 참가하여 40명의 주제발표와 실연으로 성황리에 진행되었어요. 본인은 옻칠과 나전으로 표현한 『천년의 신비 한국옻칠회화의 새로운 탄생(Mystery of the millennium! the birth of new korean Ottchil painting)』이란 주제를 발표하여 가장 많은 박수갈채를 받은 것 같습니다. 가장 기뻤던 일은 국제무대에서 한국옻칠을 고유명사화 하여 한국의 전통예술임을 알리게 된 것이지요. 그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자부합니다.”

   
 
-한국옻칠의 세계화를 위해 정부나 관계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우루시올(urushiol) 성분의 옻칠은 세계에서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 뿐입니다. 옻과 옻칠은 금보다 귀한 것이므로 옻나무는 소중한 자원입니다. 한국옻칠을 세계화 하기에 앞서 옻칠을 생산할 수 있는 옻나무단지 조성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정부 당국과 관계자들이 이 일에 관심을 가져주기를 간곡히 당부합니다. 옻과 옻칠이 충분히 생산될 때 한국 옻칠예술의 계승발전과 세계화도 가능할 것입니다.”

   
 

   
 
♣ 김성수 관장의 작품 감상